그럼 이때쯤 힙스터란 무엇인가 궁금할 수 도 있다.
힙스터를 정의하기위한 기준을 약간은 풍자적이며 조롱적으로 세워보았다.
(힙스터라는 용어자체가 가벽고가볍고 한없이 cool한 용어이다. 절대로절대로 진지하게 생각하지말자.)
-이 정의기준은 오로지 내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와 관점에의해 쓰여진것임을 미리 언급한다.
힙스터의 패션(衣)
1.명품보다는 빈티지.
-힙스터에게 명품은 없으니만 못하다. 반 자본주의적 성향이 강한그들에게, 명품소비는 곧 자본주의에 대한 복종이고 남들과 같은 가방을 매고 옷을 입는다는 것은 용납할수 없는 수치이다. 하지만 여기서 주의해야 할점은, 예를들어 디자인 없이 단지 명품로고만 크게 박혀져 있는 가방은 안되지만, 명품로고가 숨어있지만 아름다운 디자인을 가진 명품가방은 OK. 옷을 단지 소비의 목적으로 바라보는것이아니고 나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생각하기때문에, 패션에 매우 민감하다. 유행을 따르기보다는 자기스타일대로 입는다. 특이하면서도 개성있는 스타일을 가장 최고시 여기며, 값싸고 독특한 옷을 찾을수 있는 빈티지샵이나 Thrift shop (중고물품샵)을 주로 이용한다. 시대를 잘만나면 유행에 앞서가기도 하고 잘못만나면 거지취급받기도 한다.
2.쫄바지는 게이만 입는게 아니다.
-옷을 사면 그대로 입기보다는 자신의 개성에의해 자신의 취향에의해 주로 세탁소에서 수선을하거나 직접 고쳐입는다. 힙스터들은 대게 손재주들이 좋다. 남자들은 특히 바지의 핏에 민감하며 애기옷 입은것처럼 약간은 짧아 복숭아뼈가 살짝 보이는 바지길이를 이상적으로 생각한다.
3.신발은 맨발로 신어야지.
하이힐보다는 운동화 단화를 좋아한다. 활동적이고 걷기좋아하는 이들에게 하이힐과 구두는 허세이다. 아무 단화를 신는것 같지만, 신발과 옷의 색깔매치는 빠질수없는 하루를 시작하는 중요한 선택중하나이다. 하지만 할아버지 할머니한테 물려받은 하이힐과 구두는 OK. 신발은 맨발로 신는것을 이상적으로 생각하며 발이 시릴경우에는 양말을 신어도 되는데 아무거나 신어서는 안된다. 최대한 Ironic하고 어이없는 컬러선택을 해야한다. 빨래를 잘못해서 신게된 짝자기 빨간양말과 흰양말은 양말선택의 좋은예가 될수있다.
3.수염은 옵션
귀찮아서/섹시해보이려고/스타일리쉬해보일라고/ 많은 이유가있겠지만 힙스터들에게는 아마 귀찮아서가 가장큰이유일것같다. 귀찮아서 길렀는데 워낙 다른패션에 신경을 많이 쓰다보니 자동적으로 수염까지 의도된 스타일로 오해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간혹 수염에 집착하는 힙스터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은 딱보면 딱 그래보인다.
4.중은 제머리를 못깍지만 힙스터는 제머리를 깎는다.
주로 스스로 머리를 자르거나 아니면 서로 머리를 잘라준다. 염색도 스스로하거나 서로해준다. 다시 언급하지만 힙스터들은 손재주가 좋다.
5.비가오는 밤에 선글라스 2.0시력도 조영남안경
비가오는 밤에 선글라스를 끼는걸 즐긴다. 여기서 알아둬야하는 점은 뭐든 Ironic한것을 가장 이상적인것으로 생각한다. 그렇게 때문에 햇볓쨍쨍한날에 선글라스 끼는건 너무 당연하고 평범하고 makes sens하기때문에 비가오는 밤에 선글라스를 껴야한다. 알없는 조영남안경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에게 선글라스와 안경이란 단지 악세서리일뿐이다.
6.타투?
혐오스러운 타투는 No. 특히 에드하디 스타일의 강렬한 타투는 절대적으로 No. 하지만 직접디자인한 아티스틱? 한 타투는 OK. 여기서 아티스틱의 기준이 모냐는 의문이 있을것이다. 사실 모든 힙스터 패션에 정확한 정답은없다. 자신의 개성을표현하는한 모든것은 다 좋다라고 하면서 쿨한척 패션의 범주를 열어두지만 그렇다고 하기에는 안되는게 너무많다.
-힙스터 패션은 어려운게 아니다. 간단하게 말하여, 멋대로 입되 보기에 좋으면서 아이러닉하기 까지 해아하는 것이다. 자기자신의 아이덴티티를 표현하는 것이 가장중요하며 어설프게 남의 패션을 따라하거나 유행을 따르는것은 힙스터들에게는 패션테러리스트라고 불리울수있다. 하지만 아무리 자신의 개성을 표현한다고 하더라도 약간은 금기시되는 패션이있다.
1.과도한 힙합패션 2.근육을자랑하는 난닝구 3.야한옷 4.점잖은옷 5.로고가 큰 옷
개성있는 패션의 좋은예 나쁜예
나쁜예) Jersey shore에 출현하는 친구들/ 패리스힐튼/
좋은예) 조니뎁/할머니/할아버지/
결과적으로 힙스터 패션이란 개인의 개성을 가장 중시하는 경향을 볼수있다. 거대자본주의에 이해 일반화되어가는 시장속에서 자신만의 아이덴티티를 지켜나간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으로 평가되지만, 한편으로는 개성이라는 용어로써 모든 패션에 너그러운척하면서도 그안에서도 나름 엄청나게 까다롭게 나쁜 패션을 명시하고 패션을 정의하는 모순적인 행동에 의해 많은사람들에게 조롱을 많이 당하는 것도 사실이다.
2011 봄
한바라시
2011년 10월 18일 화요일
About Hipster -1
사실 내가 제일 처음 브룩클린에대해 알기이전에 (맨하탄 옆에있는 위험하다고 사람들이 그러는 도시 라고가아니고 매력적인 진짜 브룩클린에 대해) 브룩클린에 대해 관심을 갖게 만들었던 용어중 하나가 Hipster이다.
무엇이 힙스턴가요? : )
위키피디아님의 정의가 99퍼센트는 맞지만 약간은 정의가 아이러니하다. 아이러닉함 그게 바로 그들의 특징이다.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자니,
옛날부터 아티스트들의 이동경로를 보자면은 금전적인 문제가 대부분의 영향을 끼치는 듯하다.
옛 날옛적 호랑이담배피던시절의 첼시지역은 봉제공장지역이였었는데, 모든공장이 중국이나 인도 해외로 빠져나감에 의해 폐허가 되었던 첼시지역에 돈이없는 아티스트들이 모여살기 시작하였다. 아티스트들이 모여사니 아티스트들을 좋아하는 힙 한 청년들도 모이고 동네는 활기가 가득차다. 건물주들은 동네가 인기가 높아지니 점점랜트비를 올리고 돈이없는 아티스트들은 강건너 부룩클린으로 넘어가게된다.
당시 warehouse나 factory로 폐허가되어있던 브룩클린, 윌리암스버그.
브룩클린으로 넘어간 아티스트들은 또다시 동네에 활기를불어놓고, 뭔가 특별한 즐거움을 찾던 맨하탄 힙 한 청년들 또한 윌리암스버그를 발견하고 그곳에 둥지를 트기시작했다.
결국 윌리암스버그는 맨하탄 첼시보다 더 매력적인 동네가 되었고, 그러다보니 요즘들어서는 윌리암스버그 랜트비가 거의 맨하탄랜트비와 비슷해지는경향이있다.
안타갑게도, 돈없는 아티스트들은 한명두명 다시 윌리암스버그를 떠나준비를하고있다.
어디로가나 봤더니, GM이 떠난 미국최대의 폐허유령도시 디트로이트라고한다. 디트로이트에 집한채사두면 부자가 될듯싶다.
어쨋든 지금 브룩클린 윌리암스버그에는 돈이 나름 있는 아티스트/맨하탄 출신 힙한 청년 거대집단이 거주하고있다. 그들의 이름은 힙스터. 아티스트라고하기에는 약간은 가볍고, 일반인이라고 하기엔 절대 평범하지는 않은 정의내리기 힘들고 아이러닉한 매력적인 이 집단.
소위말해 Dick head라고 불리우는 이들은 대부분의 미국 청년들에 의해 made fun 되고있기도 하면서 동시에 나름 부러움을 사고있기도 한다.
하지만 누구도 자신을 Hipster라고 부르지 않으며 자신또한 Hipster를 조롱하고 비웃는것을 즐긴다. 이점도 아이러닉한 사실.
사실 이 힙스터는 브룩클린 윌리암스버그에만 존제하는것은아니다. 서울에도 런던에도 파리에도 존재한다. 자본주의 후 어느정도 물질의 풍요를 느끼고 자라온 젊은이들사이에서의 발생되는 사회적현상/물결/ 이라고 피상적으로 정의내릴수 있을것같다.
Being a dick head is cool!
2011 봄
한바라시
무엇이 힙스턴가요? : )
힙스터란?
힙스터(Hipster)는 아편을 뜻하는 속어 hop에서 진화한 hip, 혹은 hep이라는 말에서 유래했고 1940년대의 재즈광들을 지칭하는 슬랭이었다. 한 세대가 지난 1990년대 이후, 뉴욕을 중심으로 독특한 문화적 코드를 공유하는 일부 중산층 출신의 백인 젊은이들을 힙스터라고 부르고 있단다.힙스터 문화를 상징하는 아이콘으로는 쫄청바지, 무기어 자전거, 유럽식 담배, 미국식 장식품 (예를 들어 나이키 마크), 질좋은 차와 커피, 인디 음악, 독립 영화 등이 있고, 아는 척하기, 아닌 척하기, 주류에서 벗어난 대안 문화, 냉소, 실없음, 그리고 쿨해지기 등의 특징이 있다 -참조: 위키피디아
위키피디아님의 정의가 99퍼센트는 맞지만 약간은 정의가 아이러니하다. 아이러닉함 그게 바로 그들의 특징이다.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자니,
옛날부터 아티스트들의 이동경로를 보자면은 금전적인 문제가 대부분의 영향을 끼치는 듯하다.
옛 날옛적 호랑이담배피던시절의 첼시지역은 봉제공장지역이였었는데, 모든공장이 중국이나 인도 해외로 빠져나감에 의해 폐허가 되었던 첼시지역에 돈이없는 아티스트들이 모여살기 시작하였다. 아티스트들이 모여사니 아티스트들을 좋아하는 힙 한 청년들도 모이고 동네는 활기가 가득차다. 건물주들은 동네가 인기가 높아지니 점점랜트비를 올리고 돈이없는 아티스트들은 강건너 부룩클린으로 넘어가게된다.
당시 warehouse나 factory로 폐허가되어있던 브룩클린, 윌리암스버그.
브룩클린으로 넘어간 아티스트들은 또다시 동네에 활기를불어놓고, 뭔가 특별한 즐거움을 찾던 맨하탄 힙 한 청년들 또한 윌리암스버그를 발견하고 그곳에 둥지를 트기시작했다.
결국 윌리암스버그는 맨하탄 첼시보다 더 매력적인 동네가 되었고, 그러다보니 요즘들어서는 윌리암스버그 랜트비가 거의 맨하탄랜트비와 비슷해지는경향이있다.
안타갑게도, 돈없는 아티스트들은 한명두명 다시 윌리암스버그를 떠나준비를하고있다.
어디로가나 봤더니, GM이 떠난 미국최대의 폐허유령도시 디트로이트라고한다. 디트로이트에 집한채사두면 부자가 될듯싶다.
어쨋든 지금 브룩클린 윌리암스버그에는 돈이 나름 있는 아티스트/맨하탄 출신 힙한 청년 거대집단이 거주하고있다. 그들의 이름은 힙스터. 아티스트라고하기에는 약간은 가볍고, 일반인이라고 하기엔 절대 평범하지는 않은 정의내리기 힘들고 아이러닉한 매력적인 이 집단.
소위말해 Dick head라고 불리우는 이들은 대부분의 미국 청년들에 의해 made fun 되고있기도 하면서 동시에 나름 부러움을 사고있기도 한다.
하지만 누구도 자신을 Hipster라고 부르지 않으며 자신또한 Hipster를 조롱하고 비웃는것을 즐긴다. 이점도 아이러닉한 사실.
사실 이 힙스터는 브룩클린 윌리암스버그에만 존제하는것은아니다. 서울에도 런던에도 파리에도 존재한다. 자본주의 후 어느정도 물질의 풍요를 느끼고 자라온 젊은이들사이에서의 발생되는 사회적현상/물결/ 이라고 피상적으로 정의내릴수 있을것같다.
Being a dick head is cool!
2011 봄
한바라시
잊혀저가는 우리의 정신 그리고 그 숨겨진 가능성- 영화 서편제를 보고
잊혀저가는 우리의 정신 그리고 그 숨겨진 가능성
-영화 서편제를 보고.
전통문화란 그 나라에서 발생하여 전해 내려오는 고유한 문화를 뜻한다. 그리고 문화란 제 민족의 양식을 고려할 때 한 사회의 구성원이 갖는 법, 도덕, 신념, 예술, 기타 여러가지 행동양식을 총괄하는 것 이라고 정의 되어진다. 예를 들어,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이 문화로써 해석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전통문화 중에서도 설날, 추석문화, 혹은 태권도 등 현재 우리주변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고 지금 까지도 잘 전해 내려오는 전통문화가 있는 반면, 민요, 판소리 등 서양식 현대가요 등의 대체문화가 전통문화 사회적인 기능을 대신하며 점차 그 영향력이 줄어들며 사라져 가는 전통 문화가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 후자에 대한 관심이 더 많았다. 일단 문화라는 것은 한번 사라지면 다시 되돌리기가 힘들며, 작은 한 종류의 문화라도 그 문화는 동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많은 사람의 삶과 생각을 보여주고 있다. 예를 들어, 강원도 지방의 밭가는 소리를 들어보면, 2분도 안되는 짧은 음귀 이지만 밭을 가는 방법부터 당시 사람들의 심리적 상태와 생각 그리고 소를 대하는 자세 까지도 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다른 예로 소수민족의 언어가 있다. 몇 해 전 EBS에서 틈틈히 해주는 프로그램중 지식채널-E라는 프로그램에서 소수민족의 언어에대한 주제로 방송을 할 때 시청을 한적이있다. 그 때 방송에서, 북극에 살고있는 소수민족 이누이트족이 쓰는 언어에서는 우리가 보기에는 똑같은 얼음을 주변자연환경과 물리적인 요소에의해 수십개의 이름으로 달리 불른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문화는 선조들의 지혜를 담고 있기도 하다. 그런 문화가 올바른 방법으로 기록되지않고 계승되지 않는다면 우리 이전에 그문화를 형성했던 모든사람들의 삶과 지혜를잃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고 생각이 되었다.
어느 날, 친구와 온라인 메신저로 대화 중 우연히 우리가 어렸을 적 컴퓨터가 없던 시절에는 뭐 하고 놀았을 까? 라는 이야기를 했던 적이 있다. 지금 같아서는 컴퓨터가 없는 세상은 단 하루도 상상할수 없는데, 그 땐 그것이 당연한것이였고, 그당시에 나와 내친구는 탈출, 땅따먹기놀이, 고무줄 총 만들기, 미니카 경주, 한발뛰기 등 컴퓨터가 아닌 다른 놀이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이제 동네 놀이터를 가도 그러한 놀이를 하는 동네꼬마들을 찾아보기가 힘들어졌다. 나 또한 오랜만에 기억을 해보려니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내가 알고 있던문화가 이렇게 사라지나 생각하니 정말 안타갑고 슬퍼졌다. 그러한 여러가지 생각을 바탕으로, 사라가져 가는 문화중에서도 특히 전통민요에 대해 관심을갖기 시작했다. 첫째, 내 세대의 문화가 아니라는 점이 나에게 오히려 매력적이게 다가왔고. 둘째, 사라져 가기 때문에 더욱 관심을 갖고 싶어졌다. 전통민요 안에서도 신세타령노래에 한 때 푹 빠져있던 적 이있었다. 노래를 통한 갈등의 해소라는 성격은 결코 과거의 이슈일뿐만 아니라 현대의 이슈라고도 생각했다. 그 정신을 현대적으로 풀어 보고 싶었으며 민요와 내 주얼리 작품과 접목시켜 퍼포먼스 작품을 만들어 몇 달전 강원도에서 전시회를 할 때 발표했던 적이있었다.
그래서 이번 과제에서도, 전통민요와 관련된 무언가를 관람하고 싶었다. 직접 시골에 내려가 어르신들께 소리 한구절 청해 듣고 싶었지만, 상황이 되지않아 다른 방법을 택해야만 했다. 인터넷에서 민요와 관련된 여러가지 영화 뮤지컬 혹은 행사를 찾아보던 중 임권택 감독의 소리꾼의 삶을 주제로 한 영화 서편제를 발견하였으며, 민요는 아니지만 어쨌든 판소리도 민요가 다듬어진 형태이니 영화 서편제를 관람하기로 하였다.
시대배경은 1960년대초 영화 서편제는 한 남자가 소리하는 여인을 찾아 돌아다니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러던 중 소리제라는 동네 주막에 머물면서 그 여인에 대한 소식을 접하게 된다. 그러면서 그 남자는 자신의 어린시절을 회상하기 시작한다. 떠돌이 소리꾼이였던 유봉은 어느날 어느 마을 대감집 잔치집에 소리품을 팔다 그 마을 과부인 금산댁을 만나게된다. 그여인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그 아들이 바로 소리하는 여인을 찾아 소리제까지 올라온 동호이다. 그리고 소리꾼 유봉에게는 양딸 송화라는 아이가 있었는데, 금산댁과 유봉이 새살림을 차리면서 송화와 동호 두아이는 오누이 사이가 된다. 아이를 낳던 금산댁은 아이와 함께 죽고말고, 유복은 송화에게는 소리를 가르치며 동호에게는 북을가르치며 떠돌이 소리꾼 생활을 계속한다. 해방 후, 우리나라에는 점차 서양문명이 들어오고 소리를 찾는 사람들은 줄어들고 소리는 점점 멸시받고 냉대받는 그런 시기에 소리를 하며 떠돌아 다니기를 몇년, 결국 동호는 궁핍한 생활을 견디다 못하고 집을 뛰처나가고 만다. 그리고 유봉은 송화가 도망갈까봐, 혹은 송화의 소리를 완성시키고자 하는 집착에 약을 먹여 송화의 눈을 멀게 만든다. 유봉은 장님이 된 송화를 데리고 떠돌면서 소리를 가르치다 결국 송화에게 마지막 사죄를하며 눈을 감고만다. 그리고 집을 나간지 몇년 후, 누이와 아버지를 떠났다는 죄책감과 그리움에 봉호는 송화를 찾아 떠나지만, 아버지가 죽은 이후에도 계속 소리를 하며 떠돌아다니는 누이를 찾은일은 쉬운일이 아니였다. 그러던 어느날 우연히 주막에 머물게 되는데 그곳에서 송화를 재회하게 된다. 오누이는 재회의 인사 대신 심청가를 부르며 말없이 하염없는 눈물만 흘린다. 그리고는 서로에게 작별인사도 없이 각자의 길을 떠나며 영화는 마무리가된다.
“이까짓 소리하면 돈이나와 쌀이나와” 라고 소리치는 아들 동호에게 “자기가 소리에 미쳐서 득음을하면 어느 부귀영화보다 좋은것이여” 라고 말하는 아버지 유봉을 보면 어찌보면 지나치게도 순수하고도 순수한 예술가의 장인정신을 엿볼 수 가있다. 가진것 하나없이 떠돌아다니면서도 오직 소리만을 통해 희노애락을 느끼는 그를보면 행복해 보이기도, 하지만 그런 그를 포용할수없는 사회를 보면서 안타가워보이기도 하였다.
드라마틱하게 눈물을 쥐어짜는 스토리도 아니고 대사가 많은것도 아니였지만, 대신 노래를 들려주는 신이 많던 영화였다. 놀라웠던점은 그들이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보며, 나도 모르게 그들과 함께 그들의 노래속에서 울고 웃고 하고 있었던 것이였다. 유봉과 동호 송화가 함께 불렀던 아리랑은 어떤 장면보다 신명났고 동호와 송화가 마지막에 불렀던 심청가 장면은 어떤장면보다 구슬프게 다가왔다. 가사의 내용보다 부르는이의 감정이 먼저 내 심장을치고 노래가 귀에 울려퍼졌다. 우리 소리가 이렇게나 감정적인 노래였는지 사실 잘 알지는 못했던지라 영화를 본뒤 그 감동은 매우 컸었다. 인간의 감동이라는 감정은 공감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내가 한국인이기 때문에 그들의 노래에 그리 쉽게 감정이입을 할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외국인이 이 영화를 봤을 때랑 한국인이 이 영화를 봤을때랑의 감동은 다를 것이다. 외국인이 다른문화에 대한 신기함으로 이영화를 감상하였다면, 한국인은 이영화를 보고 공감과 거기서 오는 감동의 전율을 느낄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가 한국인임을 자랑스러워 해야 하는 점, 왜 우리가 우리문화를 아껴야 하는 점 일 것이다. 우리문화를 가장 잘 이해할수 있는 사람들은 바로 우리, 한국인, 이기 때문이다.
시대가 변했으니 사람들의 생각화 행동양식도 변하고 그것에 따른 모든 문화적양식이 변한다는 것은 당연한것이다. 하지만 모든 변화의 결과에는 변화의 과정이 있기 마련이다. 현대 우리가 어떠한 특정한 문화를 좋아하고 추구한다고 하더라도 그 뒤에는 그러한 특정한 문화를 좋아하기 까지의 과정이 있다. 예를 들어 현재, TV프로그램을 보면 “나는가수다”, “슈퍼스타케이” 등 노래하는 프로그램이 참많다. 옛부터 너도나도 노래하고 노는것을 좋아했던 민족이였던지라, 특히나 이러한 노래 프로그램에 열광하는지도 모르겠다. 전통 문화와 현대적 추구성이 잘 어울린 또다른 예가 있다. 바로, 현재 KBS에서 방영중인 공주의 남자가 그 예이다. 첫 예고편을 봤을때 눈에 들어왔던 문구가 하나 있다 “조선판 로미오와 줄리엣”. 로미오와 줄리엣은 매우 유명한 세익스피어의 비극 작품이다. 이제것 영화로 만들어 진것만 수십편이며 연극부터 뮤직컬 까지 수백번에 거쳐 재해석이 되온 작품이다. 이러한 소재를 어떻게 조선이라는 우리나라의 문화에 알맞게 조합을 할까 궁금 해서 시청하기 시작하였고, 그 결과는 아주 만족스러웠다. 어쩌면 이제는 진부할수 있는 스토리에 우리만의 감정인 절제와 그에 따른 한이 담겨있다. 그리고 역사적인 사실까지 사이사이 가미 시키며 작품속의 주인공의 사랑을 더욱 애절하게 만든다. 애절하다. 라는 감정을 아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더욱 작품에 몰입하게 되며, 외국 사람들에게는 문화적 컨텐츠로 똘똘 뭉처진 이 작품이 매우 신선하게 다가올것이다.
결과적으로, 우리의 전통문화는 우리에게 뿐만아니라 다른 나라 사람에게도 영향력을 주는 살아있는 힘을 지니고 있다. 현재 그모습이 점차 사라져가고 작아져가고 있더라도, 그안에는 무한한 가능속속에 거대한 시간과 수많은 사람들의 감정을 내포하며 여전히 살아있는 힘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그 힘을 발견할 줄알고 지켜내는건 바로 우리의 몫일 것이다. 시대가 발전하고 점차 빨리지면서, 국가시대를 넘어 이제 세계화 시대이다. 인터넷을 통해 국경은 이미 무의미해 졌으며, 여러가지 문화가 한데 섞이며 결국 빠른시간안에 문화의 단일화를 이루어 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는 두가지 선택이 있다. 섞여서 따라 갈텐가 아니면 우리의 아이덴티티를 지켜나가 세계문화를 이끌어갈텐가. 이제 전세계는 문화전쟁을 하고있다.
2011. 가을
한바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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